탕비실 안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사람 두어 명이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좁은 탕비실이었지만, 무언가를 간단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충분하게 준비되어있었다. 찬장에는 여러 가지 차들과 코코아가루들, 과일청. 서랍에는 간단한 과자들. 미니냉장고에는 누가 채우는 건지 몰라도 신선한 우유 같은 게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간식’만을 위한 재료들. 그렇게 설계되고 준비된 공간에 페이링이 들어왔다. 탕비실 밖, 휴게실로 통하는 문은 열어둔 채로 그녀는 찬장을 열었다.
“얼마나 타드릴까요.”
“혀가 떨어질 정도로요.”
찬장을 뒤져 익숙하게 핫 초코 통을 끄집어내던 손이 멈췄다. 혀가 떨어질 정도로 달달한 음료는, 저 밖 휴게실 소파에 걸터앉아있는 신우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찾던 것이었으니까.
“...다음번에는 사카린을 타 드린다고 했는데요.”
“...당뇨로 죽을 생각은 없어요.”
“사카린은 당분이 아니랍니다. 감미료인데다가 칼로리는 제로입니다.”
“...살려주세요.”
흐린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데웠다. 단맛을 줄이기 위해 섞을 것 한 잔, 그리고 코코아를 녹일 것 반의 반 잔. 반대로 된 것 아니냐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리지만 이정도로 해야 그야말로 ‘혀가 떨어질 것처럼 달달한’ 핫초코가 되니까, 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뚜껑을 열고 핫초코 가루를 숟가락으로 크게 퍼냈다. 그대로 잔에 한 숟갈-
“...요즘엔 어떠십니까.”
“아... 요즘 일 많죠-... 그러고 보니 고양이쪽도 일 많지 않아요? 대강 보니까 나비랑 거의 비례하던데.”
또 한가득, 마음을 담아서 두 숟갈-
“...일이야 항상 많죠. ...그나저나 저는 일에 대해서 여쭤본 게 아닌데요.”
“하하하... 평소 같아요.”
걱정을 담아 세 숟갈, 네 숟갈.
“...어느 순간 발이 보여요. 그걸 따라 올라가면... 또 그게 보여요. 천장에서 달랑달랑....”
“.......”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퍼 넣었다. 콱콱 들어가는 숟가락이 어느새 바닥을 긁었다. 저런.... 잔에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갈색 가루가 가득 쌓여있었다. ...녹이기 좀 어려울 거 같은데. 숟가락은 포기하고 좀 더 가느다란... 젓가락을 하나 빼 들었다.
“...그럴 때마다 페이링씨 조언 생각했어요. 현실에 집중하고, 지금 이 앞을 보라고.... ...혼자서는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벗어났긴 했어요. 기분이 안 좋아졌지만.”
“...잘 하셨습니다.”
마시멜로를 최근에 사서 넣어놨던 거 같은 데. 핫초코 통을 다시 찬장에 돌려놓고 선반을 뒤적였다. 말랑거리는 식감이 조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구석에 박혀있던, 양이 좀 줄어든 봉지를 쥐고, 그나마 녹았지만 거의 잼 수준의 점도를 자랑하는 핫초코와 데운 우유를 손에 들었다.
머그잔을 앞에 내려두자 신우의 눈이 흔들렸다.
“이거....”
“분명히 ‘혀가 떨어질 듯 단’것으로 주문하셨으니 까요.”
“하, 하하.... 정말 혀가 떨어질 것 같네요....”
여러 가지 의미로....
뒤이어 중얼거린 목소리를 못들은 척 하며, 페이링은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그나마 평범한, 핫초코가 들려있었다.
“...으... 달아....”
오늘도 평화로운 휴게실에는 달달한 향기와 누군가의 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덤으로 단맛을 줄이기 위해 우유를 붓는 다급한 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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