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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그 바람의 끝에 있던 /to.바실리사

by 뮤아넨 2016. 10. 24.
하나.
활을 당긴다.

머리 끝까지 차고든 분노가 오히려 머릿속을 차갑게 가라앉혔지만 울렁이는 가슴만큼은 식히지 못했다. 대기가 불안정할 정도로 모여든 바람이 그 증거였다. 똑바로 타오르는 불이 한차례 흔들리고, 메겨진 시위에 감돈 바람은 표적을 토막내려는 날카로운 살기가 감돌았다. 뭐라, 말을 걸어오는 마녀의 목소리가 귀에 닿지 않았다.

둘.
시위를 놓았다.

조준은 필요치 않았다. 수천, 수 만번을 당긴 시위였다. 빗나갈리 없을 화살을 쏘아보내며, 화살이 비명을 지를 만큼 가득한 바람또한 마녀를 향해 담아보냈다. 하지만 마녀도 나름 방비가 있던 건지 손을 뻗어 불줄기를 뿜어냈다. 저것이 마을을 불태운 마법.

'하지만- 소용없어.'

바람을 가득 담은 화살촉에 불길이 닿자마자 담겨있던 바람이 터져나왔다. 뻗어진 불줄기는 물론이고 마을을 태우던 불도 한순간 헤짚을 만큼 큰 바람이었다. 바람은 바람이고, 화살은 화살. 담겨진 바람은 와해되었어도 사람의 손으로 쏘여진 화살은 처음 속도 그대로 나아가 마녀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터져나오는 피.
휘날리는 드레스 자락.
무너져내린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 그 모습.

처연하게, 청초하게 쓰러진 그 모습에 에린은 오히려 저가 악당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마녀는 마녀. 사람을 홀리고 죽이는 것으로 만족을 얻는 종족.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죄악감을 억누른 그는 숨을 가다듬고 새 활을 시위에 걸었다.


마녀가 일어섰다.
화살을 뽑고, 바닥으로 내던진 그녀도 이제야 살기를 담아 에린을 쏘아봤다. 그 시선이 닿은 얼굴 피부가 따가웠다. 이것이 과연 마을을 불태우는 화염의 열기에 데인 것인지, 아니면 저 마녀의 살기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내게, 이 주제도 모르는."

온다.
본능의 경고에 따라 시위를 당긴다.
활을 당기고 바람을 끌어모았다.

"너 따위가!"

마녀의 머리를 노린다.
아무리 마녀라 하더라도 머리가 날아간다면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우선은 제압 먼저. 회유가 가능하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는 화가 난 마녀를 회유할 수 없었다. 우선은 제압. 그 후에 핵을 추출. 우선 확인된 능력은 화염 능력이었다. 분명 후배들의 무기가 될, 중요한 전력이 될 수 있을 마법-

..일텐데.


"아."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은 신음성을 뱉어냈다. 화염이 화살을 가로막을 것은 예상을 했다. 화살에 담긴 바람이 그 불꽃을 흩어내고, 화살만이 나아가리라는 것도 예상을 했었다. 다른데도 아니고 머리였다. 마법의 보조가 없는, 순수한 그의 팔 힘으로 쏘아보냈더라 해도 화살이 나아가던 길은 마녀의 머리였다. 바람째 날려보냈다면 좋겠지만, 화살만 박히더라도 괜찮았다. 큰 고통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몸을 제압하기 때문에, 에린도 고문에 대하여 배운 것이 있었다.


인간의, 마녀의 두개골은 가볍게 뚫고 들어갈 그 화살은.

화염을 뚫고 나아간 화살은.

마녀가 아닌.

그 소녀의.


꿀을 머금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반쯤 뜨인 눈동자의 빛이 꺼져버렸다.

가늘게 벌어진 입가에서는 피가 흐르고.

그가슴에연약한피부에살을찢고들어간그화살에피어나는붉은피가꽃잎처럼흩날려내가무얼맞춘거지내가무엇을쏴버린거지어째서눈의빛이죽어버린거야그가슴에피부에철을활을피가아직어른이되지못한그품에죽음싫어어째서내가왜지키지못하고피가화살이저게왜저기에왜어째서내가내가내가어째서마녀를내가내가마녀를내가내가내가마녀내가내가죽여내가내가내가....

...내가?


무언인가 깨져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