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사단 무기연구소의 밤은 무척 늦게 끝난다. 현 날씨에 시각을 다투는 시체를 다루는 일과와 실험을 병행하다보면 밤을 새는 것은 드물지 않았고 자정을 넘겨서야 연구소의 불이 꺼지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배로 더 많았다. 대부분은 연구소의 불이 꺼지면 각자의 숙소에 들어가 쓰러져 잠 들었지만 운 좋게도, 혹은 재료의 부족으로 보급품의 도착을 기다려야하기에 어쩔수 없이 일찍 파하는 날에는 저마다 자기 전에 각자 자유시간을 가졌다.
"...이건 실험 때문에 생체 시간이 흐트러진 탓일까요. 이젠 자정이 넘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으니까요."
잠옷을 대신해서 큰 남성용 드레스 셔츠를 입은 바베트는 소매를 걷어올리며 뒤돌아보았다. 일과가 일찍 끝났다 하더라도 시간상으로 따지면 늦은 밤. 그런 시각에 다른 사람을 방에 들여놓았다는 건 그 손님이 몇가지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상관, 연인. 혹은 친구-... 라거나.
"전쟁이 끝나도 취침 시간이 늦어지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특히 바베트 같은 미인에겐 불면은 큰 독이라고요?"
"...불면이 미인에게 독이라면, 그건 오델리도 마찬가지에요."
늦은 시간임에도 바베트의 방에 들어온 이는 바베트의 연구소 동료이자 친구-인 오델리였다. 그녀도 자기 전이었는지 가벼운 슈미즈 차림에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바베트의 숙소에 방문했다. 그녀가 익숙하게 와인병을 책상에 올리고 의자를 끌어 앉는동안 바베트도 찬장에서 치즈를 꺼내놓았다. 이 익숙한 대응은 오델리가 바베트의 방에 여러번 방문했다는 증거였다. 이것 외에도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간이 체스-찰흙을 구워 만든 말이 올려진-라던가 두개로 늘어난 와인잔은 바베트의 방에 오델리의 흔적을 증명했다.
익숙한 실랑이-서로 미인이라는 것을 밀어두는 가벼운 말다툼-를 뒤로하고 그녀들은 현재 연구 진행도에서 시작해서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오델리의 주도와 바베트의 대응으로 여러 대화를 하던 그녀들의 대화의 흐름이 바베트의 머리카락으로 옮겨진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바베트. 머리칼, 조금 엉킨거 같은데요?"
"...미처, 빗을 시간이 없었어요. 자기 전에 빗으면 되는 거니까 저는 괜찮아요."
평소에는 흐트러짐이 거의 없이 완벽하게 정돈되었던 그녀의 머리칼은 옷을 갈아입고 이리저리 움직인 탓에 끄트머리가 약간 엉킨 것이 눈에 보였다. 눈에도 보일 정도라면 실제로 빗었을 때 걸려나오는 머리칼의 양은 그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바베트는 잘 때에도 머리카락 풀어두고 자는 거에요? 잠버릇이라도 있으면 아침에 엄청 엉킬거 같아요. 특히 바베트 머리는 정말로 길고 구불거리니까요."
"...잘, 때에는... 급하면 일단 하나로 묶어두곤 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가볍게 땋아요."
"땋고 자는 거에요?"
"네에-...."
대답을 하고 치즈 한 조각을 집어 우물거리던 바베트는 저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오델리의 얼굴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그녀의 얼굴에는 흥미와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있었기에... 종일 무덤덤하던 바베트는 어디에서 그녀의 흥미를 자극했는지 몰라 난처했다.
"그럼, 바베트. 내가 바베트 머리 땋아줘도 되는 거죠?"
"에, 네?"
오델리는 몸을 바베트쪽으로 바짝 기울였다. 반짝반짝... 생기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바베트는 무심코 그녀의 눈동자가 새벽 별빛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 긴 머리칼... 만지면 부드러울 거 같고-...."
"...저는 괜찮지만.... 수고, 해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완곡하게 표현된 허락에 오델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바베트를 화장대 앞에 앉혔다. 실험때문에라도 여러번 보급품이 조달되는 1사단에는 조금만 돈이나 노력을 한다면 거울이라던가 브러시같은 물품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전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이들이 조금이나마 생활을 편하게 보내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물론 커다란 거울은 아니지만 얼굴정도는 비출 수 있는 손 두개정도 크기의 거울을 들여오기 위해서 그녀는 꽤 많은 시간을 써야했다. 거울 자체를 들여오기 위한 돈은 그리 많이 들진 않았지만 적절하게 들여올 타이밍을 한참동안 놓쳤었기 때문이었다. ...화장대 위에 놓인 거울로 다른 생각-현실도피를 하던 바베트는 앞으로 넘겨진 머리칼이 오델리의 손에 의해 전부 뒤로 넘어가고, 그 끝에서부터 닿는 브러시의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늘 생각 하는 거지만- 바베트 머리카락은 정말 부드러워요. 어떻게 관리 하는 거에요? 여기서는 관리할 도구나 그런거 들여오기 힘들텐데."
"...개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민간 요법을...."
"머리 리본은 어디 있어요?"
"아. 그건 화장대 서랍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머리칼에 닿는 다는 느낌은 꽤나 미묘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살갗에 직접 닿는 것도 아닌, 머리칼로 전해지는 손길이나 진동은 묘하게 사람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약간 노곤노곤해지는 기분에 바베트는 눈을 감고 몸을 편하게 풀었다. 오델리고 그걸 알아차렸는지 쿡쿡 웃는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너무 풀어지는 거 아니에요?"
"...오델리니까요...."
눈을 감고 있어도 오델리가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만지는 지 정도는 알기 쉬웠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 머리칼을 가르고 서로 엇갈려 땋는 느낌. 서랍을 열고 머리끈을 꺼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베트는 제 머리가 더 길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끝! 다 했어요. 잘 했죠?"
"...감사합니다, 오델리. ...잘 하셨네요...."
오델리가 땋은 머리는 너무 단단하지도, 흐물거리지도 않았다. 혼자서 머리를 땋았을 때 땋은 쪽으로 머리카락들이 쏠리는 현상도 보이지 않아 바베트는 무척이나 만족했다. 머리 다발을 만지작거리며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시야에 무언가 하얀 것이 걸린 것은 그때였다. 전신을 비출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사람의 얼굴은 넉넉하게 비출 수 있는 거울에, 하얗게 팔랑거리는 무언가가 비쳤다.
"...?"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한 그것은 새하얀 리본. 머리카락의 일부를 내어 감싼, 실용보다는 장식적인 느낌이 강한 리본이지만 구름처럼 새하얀 색은 칠흑처럼 짙은 바베트의 머리칼과 잘 어울렸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은 화이트 데이. 발렌타인데이에서 한달 정도 지나면 찾아오는, 약간은 들떠도 좋은 기념일. 오늘도 연구실 여기저기에서 사탕냄새가 풍겼다는 걸 기억한 바베트는 힐끔, 오델리의 눈치를 살폈다. 오델리는 아직 바베트가 리본을 알아차렸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선물...일까요.'
장난과 선물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지만 바베트는 여의치 않았다. 장난이라도 선물은 선물. 가슴에서 몽골몽골 올라오는 기분은 분명 '감동'이리라.
"오델리. ...아주, 아주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바베트는 오델리를 보며 희미하지만 뚜렷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실험 때문에 생체 시간이 흐트러진 탓일까요. 이젠 자정이 넘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으니까요."
잠옷을 대신해서 큰 남성용 드레스 셔츠를 입은 바베트는 소매를 걷어올리며 뒤돌아보았다. 일과가 일찍 끝났다 하더라도 시간상으로 따지면 늦은 밤. 그런 시각에 다른 사람을 방에 들여놓았다는 건 그 손님이 몇가지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상관, 연인. 혹은 친구-... 라거나.
"전쟁이 끝나도 취침 시간이 늦어지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특히 바베트 같은 미인에겐 불면은 큰 독이라고요?"
"...불면이 미인에게 독이라면, 그건 오델리도 마찬가지에요."
늦은 시간임에도 바베트의 방에 들어온 이는 바베트의 연구소 동료이자 친구-인 오델리였다. 그녀도 자기 전이었는지 가벼운 슈미즈 차림에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바베트의 숙소에 방문했다. 그녀가 익숙하게 와인병을 책상에 올리고 의자를 끌어 앉는동안 바베트도 찬장에서 치즈를 꺼내놓았다. 이 익숙한 대응은 오델리가 바베트의 방에 여러번 방문했다는 증거였다. 이것 외에도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간이 체스-찰흙을 구워 만든 말이 올려진-라던가 두개로 늘어난 와인잔은 바베트의 방에 오델리의 흔적을 증명했다.
익숙한 실랑이-서로 미인이라는 것을 밀어두는 가벼운 말다툼-를 뒤로하고 그녀들은 현재 연구 진행도에서 시작해서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오델리의 주도와 바베트의 대응으로 여러 대화를 하던 그녀들의 대화의 흐름이 바베트의 머리카락으로 옮겨진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바베트. 머리칼, 조금 엉킨거 같은데요?"
"...미처, 빗을 시간이 없었어요. 자기 전에 빗으면 되는 거니까 저는 괜찮아요."
평소에는 흐트러짐이 거의 없이 완벽하게 정돈되었던 그녀의 머리칼은 옷을 갈아입고 이리저리 움직인 탓에 끄트머리가 약간 엉킨 것이 눈에 보였다. 눈에도 보일 정도라면 실제로 빗었을 때 걸려나오는 머리칼의 양은 그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바베트는 잘 때에도 머리카락 풀어두고 자는 거에요? 잠버릇이라도 있으면 아침에 엄청 엉킬거 같아요. 특히 바베트 머리는 정말로 길고 구불거리니까요."
"...잘, 때에는... 급하면 일단 하나로 묶어두곤 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가볍게 땋아요."
"땋고 자는 거에요?"
"네에-...."
대답을 하고 치즈 한 조각을 집어 우물거리던 바베트는 저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오델리의 얼굴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그녀의 얼굴에는 흥미와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있었기에... 종일 무덤덤하던 바베트는 어디에서 그녀의 흥미를 자극했는지 몰라 난처했다.
"그럼, 바베트. 내가 바베트 머리 땋아줘도 되는 거죠?"
"에, 네?"
오델리는 몸을 바베트쪽으로 바짝 기울였다. 반짝반짝... 생기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바베트는 무심코 그녀의 눈동자가 새벽 별빛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 긴 머리칼... 만지면 부드러울 거 같고-...."
"...저는 괜찮지만.... 수고, 해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완곡하게 표현된 허락에 오델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바베트를 화장대 앞에 앉혔다. 실험때문에라도 여러번 보급품이 조달되는 1사단에는 조금만 돈이나 노력을 한다면 거울이라던가 브러시같은 물품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전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이들이 조금이나마 생활을 편하게 보내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물론 커다란 거울은 아니지만 얼굴정도는 비출 수 있는 손 두개정도 크기의 거울을 들여오기 위해서 그녀는 꽤 많은 시간을 써야했다. 거울 자체를 들여오기 위한 돈은 그리 많이 들진 않았지만 적절하게 들여올 타이밍을 한참동안 놓쳤었기 때문이었다. ...화장대 위에 놓인 거울로 다른 생각-현실도피를 하던 바베트는 앞으로 넘겨진 머리칼이 오델리의 손에 의해 전부 뒤로 넘어가고, 그 끝에서부터 닿는 브러시의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늘 생각 하는 거지만- 바베트 머리카락은 정말 부드러워요. 어떻게 관리 하는 거에요? 여기서는 관리할 도구나 그런거 들여오기 힘들텐데."
"...개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민간 요법을...."
"머리 리본은 어디 있어요?"
"아. 그건 화장대 서랍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머리칼에 닿는 다는 느낌은 꽤나 미묘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살갗에 직접 닿는 것도 아닌, 머리칼로 전해지는 손길이나 진동은 묘하게 사람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약간 노곤노곤해지는 기분에 바베트는 눈을 감고 몸을 편하게 풀었다. 오델리고 그걸 알아차렸는지 쿡쿡 웃는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너무 풀어지는 거 아니에요?"
"...오델리니까요...."
눈을 감고 있어도 오델리가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만지는 지 정도는 알기 쉬웠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 머리칼을 가르고 서로 엇갈려 땋는 느낌. 서랍을 열고 머리끈을 꺼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베트는 제 머리가 더 길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끝! 다 했어요. 잘 했죠?"
"...감사합니다, 오델리. ...잘 하셨네요...."
오델리가 땋은 머리는 너무 단단하지도, 흐물거리지도 않았다. 혼자서 머리를 땋았을 때 땋은 쪽으로 머리카락들이 쏠리는 현상도 보이지 않아 바베트는 무척이나 만족했다. 머리 다발을 만지작거리며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시야에 무언가 하얀 것이 걸린 것은 그때였다. 전신을 비출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사람의 얼굴은 넉넉하게 비출 수 있는 거울에, 하얗게 팔랑거리는 무언가가 비쳤다.
"...?"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한 그것은 새하얀 리본. 머리카락의 일부를 내어 감싼, 실용보다는 장식적인 느낌이 강한 리본이지만 구름처럼 새하얀 색은 칠흑처럼 짙은 바베트의 머리칼과 잘 어울렸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은 화이트 데이. 발렌타인데이에서 한달 정도 지나면 찾아오는, 약간은 들떠도 좋은 기념일. 오늘도 연구실 여기저기에서 사탕냄새가 풍겼다는 걸 기억한 바베트는 힐끔, 오델리의 눈치를 살폈다. 오델리는 아직 바베트가 리본을 알아차렸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선물...일까요.'
장난과 선물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지만 바베트는 여의치 않았다. 장난이라도 선물은 선물. 가슴에서 몽골몽골 올라오는 기분은 분명 '감동'이리라.
"오델리. ...아주, 아주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바베트는 오델리를 보며 희미하지만 뚜렷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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