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쳐버렸다.”
늦은 밤. 가로등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어두운 골목길 안쪽에서 비린 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노란 전구가 오래된 것인지 몇 번 꿈뻑이던 등이 제대로 빛을 내리 뿌리자, 그 아래에 있던 참상이 제대로 드러났다. 좁은 골목 한 구역이 붉게 물들었고, 그 붉은 것의 원산지로 추정되는 무언가의 덩어리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그 사이에 다른 이의 피를 뒤집어쓴 한 사내-가 찢긴 옷자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쓰러진 자의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꽤 깊게 찢긴 상처는 내장을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루, 이틀 쉰다 해서 나을 만한 상처는 또 아니었다. 의무실, 가야하나. 꿈뻑거리는 등을 올려다보며 눈을 꿈뻑인 그-임도빈은 의무실에 상시 대기하고 있을 제 연인을 떠올렸다. ...응. 들키면 안 되겠지. 윤성이는 안 그래 보여도 잔소리가 심하단 말이야. 몸을 험하게 다루는 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다운 판단이었다. 이미 찢긴 옷을 벗어 길게 잘라내 붕대 대신 상처를 단단히 감은 도빈은 채 찢기지 않았던 외투를 다시 걸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차윤성은 심기가 불편했다. 분명 이 시간쯤이면 복귀한다고 했는데, 복귀하자마자 오기로 했던 도빈이 의무실로 오지 않았다. 분명 외부 임무를 다녀왔을 테고, 몸을 그다지 사리지 않는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분명히 어딘가 다쳐왔을 게 분명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상처도 괜찮다며 대충 처치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사옥을 반쯤 헤매고 있을 때, 저 너머에서 아는 얼굴이 보였다.
“비령 선배. 도빈씨는요?”
“...방금 스쳐지나갔는데.... ...못 만났어요?”
페이링은 아까 저가 꺾어온 길을 돌아봤다. ...아까 도빈이 왔던 방향을 생각하면 유에를 못 만났을 리가 없는데...? 설마....
“피하고, 있는 걸까요....”
“...도빈씨가 저를 피하는 건 딱 한 가지 이유뿐이죠....”
“...그러고 보니 아까 스쳤을 때 피 냄새가 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라고 했지만... ...분명 다쳤네요.”
윤성이 활짝 웃었다. 의무실에 꼬박꼬박 제대로 가는 페이링은 이젠 자주 못 보는 미소(?)긴 하지만... 분명 저 웃음은 잔소리라는 이름의 독설을 내뱉기 전의 얼굴이었다.
“...얼마나 다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도빈씨가 저를 피할 정도면 일정 이상 다쳤다는 거겠죠, 비령 선배?”
“...아마도, 그러겠죠.”
마지못해 페이링이 끄덕이자 윤성의 손 안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세상에. 저것까지 꺼내들 정도면 유에가 화 단단히 났다는 건데.
“...잡히면 잔소리 정도로는 안 끝날 거예요.”
...제 37회 도빈 대 윤성의 술래잡기가 개시되는 순간이었다.
꽃 부서에다 체력 부족인 윤성이 나비 부서의 도빈과 정면대결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축에 속하는 그는 팔팔하게 날뛰는 현역 나비 부서를 맨손으로 붙잡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라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렇기에 그는 도빈의 앞에 나서기 보다는 함정과 도구를 응용했다. 제일 자신 있는 마비침으로 도빈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거나.... ...그것을 또 그대로 당해줄 도빈이 아니라서.... 날아오는 바늘은 칼로 쳐내고, 설치된 함정은 육체적 능력으로 그대로 넘어가는 현역 나비 부서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윤성의 함정 실력만큼 회피 실력도 늘어갔다. 도빈도 윤성과 마주칠 상황은 최대한 피했고, 윤성도 본인의 일정도 있어서 온전히 그를 쫓는 것은 무리였다. 날이 갈수록 핏기를 잃어가는 두 사람을 보다 못한 주변인들이 나설 때가 되어야 그 둘의 술래잡기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이전에는 그나마 재미있었지만... 비교적 큰 상처를 달고 돌아다니는 도빈이나, 그런 도빈을 쫓느라 가뜩이나 약한 체력과 적은 잠을 소비하는 윤성을 가만히 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으니까.
“...배달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쯤 되어서 주변 동료들까지 나설 것을 알아 아주 혼자 돌아다니던 도빈이를 잡아온 것은 페이링이었다. 고양이 부서였지만 임시 간부인 만큼 임무의 배치를 어느 정도 간섭할 권리가 있었고, 나비 부서 임시 간부인 민하가 협력해 준 덕분이었다. 간부에게는 조직원의 건강 상태를 신경 쓸 의무가 있었으니까. 임무에 ‘우연히’ 마주쳐, 그를 ‘우연히’ 포획한 페이링은 도빈을 의무실 침대에 내려뒀다.
도빈의 유일한 패인이 그것이었다. 다친 것을 방치한 죄인도 그였고, 도망친 것도 그였으니 당연하게도 주변에서 협력하는 사람은 윤성이였다.
“...대체 왜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 걸까요.”
“...글쎄요....”
차마 웃는 얼굴로 하는 잔소리가 무섭기 때문이라고 말 못하는 페이링은 그저 조용히, 의무실에서 나왔다. 제 37회 술래잡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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